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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상 신부 영신수련 에세이] [이냐시오 포커스] 이근상 시몬 신부의 영신수련 에세이 7 - 선택

2020.12
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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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상 시몬 신부의 영신수련 에세이 7 - 선택


바람이 많이 부는 사월, 나는 강화에 있는 한 피정집 면담방에서 피정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정 면담 약속을 건너 뛴 용감한 수녀님 덕분에 갑자기 빈 시간이 생겼다. 나무들은 연둣빛 봄. 한 나무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무는 두 갈래 줄기로 뻗어 있었는데 한 가지의 끝에 하얀 줄이 묶여 땅으로 당겨져있었다. 팽팽한 긴장이 느껴졌다. 나무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틀을 잡아주는 모양이었다. 바람이 불면 근처 나무들이 크게 흔들렸으나 가지를 붙잡힌 나무는 반쯤만 흔들거렸다. 삶을 바르게 펴는 힘겨운 수고를 하고 있는 중이라 느껴졌다. 피정 내내 삶의 선택을 말했는데막상 저 나무가 선택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 하였다. 선택은 한번 잡아당기고 마는 젊은 사건이 아니라, 밤과 낮, 어제와 오늘을 계속해서 잡아당기는 삶의 오랜 불편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선선한 바람에 마음껏 몸을 뒤척이지 못하는 나무야 말로 이 모든 의미를 알 수가 없을터인데, 사람은 어쩌자고 저기에 줄을 매달았을까.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내게는 나무가 줄을 거부해도 좋을 만가지의 이유가 떠올랐다. 영신수련의 선택이 향하는 가난과 모욕, 업신여김이 하느님 나라에 정말 도움이 될 것인가? 오래도록 가지를 잡아당기는 부단한 수고에 일순 경건해졌다가, 바람에 마음껏 흔들거릴 수 없는 나무의 긴장에 마음이 먹먹해지는 걸 반복했다. 사실 길은 늘 여러 갈래였다. 보다 자연스러운, 보다 인간적인 흔들거림들. 사월의 바람이 나무들을 세차게 뒤흔들자, 바람에 따라 휘어지는 나무들이 더 시원하고, 더 평안해 보였다.


나는 자유로운 나무들의 흔들거림에 마음을 두고 한참을 머물렀다. 그런데 천천히 어떤 환영이 온 몸을 허우적거리며 다가오는 듯했다. 바람에 따라 자유롭게 흔들거리는 것만 같았던 나무의 가지들에 수 없이 많은 줄들이 날카롭게 엉켜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아노줄같은 얇고 단단한 줄이 가지들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단 한 가지도 자유롭지 못한 채, 마디마디 붙잡힌 가지들이 이 곳 저 곳으로 휘어졌다. 바람, 아니 줄이 너무 강하고 질겨, 나는 찡그리며 뒷걸음쳤다.


그리고 두툼한 한얀 줄이 걸린 두 갈래 나무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다. 가지의 한 쪽 끝을 당기는 하얀 줄이 묵묵하게 나무를 붙잡고 있는 것같았다. 어쩌면 단 하나의 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우리의 선택을 걸기 전, 우리의 가지는 수 많은 줄들에 잡아당겨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하얀 줄에 묶인 나무가 차츰 더 편해 보였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영신수련의 목적은 아니다. 영신수련은 만남 자체를 향한 순수한(?) 열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하느님을 조금 더 깊게 만나기 위해서 영신수련 피정에 들어왔노라는 피정자들의 소박한 갈망 앞에서 나는 좀 난감했었다. 물론 믿는 이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이니 그와의 참 만남이란 그 모든 것이 수렴하는 하나의 목적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영신수련의 목적을 좁게 특정한다면 그건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이라기보다 하느님을 따르려는 결심, 곧 우리의 선택이라는데 많은 이들이 동의해 주리라 믿는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흡족한 만남의 결핍 속에서도 우리의 선택은 여전히 가능하고 여전히 요청된다는 사실. 동의하거나 말거나 영신수련은 그리스도의 왕국’, ‘두개의 깃발’, ‘세 부류의 사람들등 고집스럽게 선택의 주제들을 다 거친 뒤에야 피정자를 그리스도의 공생활로 이끌어 간다. 주님의 삶을 알기도 전, 먼저 그 분의 삶을 선택한 뒤에서야,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다는 역설이 영신수련을 부자연스럽게잡아당기는 셈이다.


그러니 선택이란 영신수련의 척추, 문제는 인간의 선택이 근본적으로 허약하다는데 우리의 번민이 있다. 차라리 우리의 허약한 선택 대신 우리의 약함을 모두 불살라주시기를. 당신의 강렬한 힘과 은총이 우리의 선택을 대신한다면 좋으련만. 당신은 우리의 선택을 묻고 또 묻는다. 끌고 가시면 다 내던지고 따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렇게 불타오르고 싶은데 영신수련은 먼저 앞서 가라며 우리의 등을 밀고 있다. 그마저 한발 내딛는 것으로 끝나는 선택이 아닌, 나무의 틀을 잡는 저 한결같은 줄처럼 오래도록 붙잡아야 하는 팽팽한 선택. 다시 걸고 또 걸어 놓아야 하는 삶의 불편. 이리로 저리로 마음껏 휘고픈 자를 굳이 한방향으로 펴야하는가? 휘몰아치는 사월의 사나운 바람에 나무들이 흔들거리는데, 한 팔을 붙잡힌 나무가 담담하게 답하는 듯하다. ‘참자유를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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