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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포커스] 이근상 시몬 신부의 영신수련 에세이 5 - 식별, 아이를 품은 마음.

2020.08
2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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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수련의 식별아이를 품은 마음

 -이근상 시몬 S.J.

 

 

영신수련의 식별은 치우치지 않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묻는 과정이다자신의 욕구라는 거대한 힘에 거슬러 더 가난하고더 보잘 것 없는그리스도의 깃발로 내딛는 일이다욕구는 당장 우리 입과 귀를 만족시키는 가벼운 유혹들갑돌이와 갑순이가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 따위를 놓아두는 일 정도가 아니다오히려 우리 역사오래된 상처슬픔과 기쁨을 통해 숙성하여 이미 우리 자신이 되어버린지 오래인 것들을 떠나는 일실로 욕구를 거스른다는 말은 허황한 약속처럼 힘겨운 일이다버려야 할 것이라 기왕에 생각해 온 것들을 버리는 게 아니라 자기의 삶과 사랑을 거스르는 일이니욕구를 거스른다는 일 그건 떠오르는 크고 작은 욕심들보다 더 깊고날카로워버겁다하지만 인간이 자기 삶의 무게를 감지하며 스스로를 거스를 때그는 땅을 디딘 발바닥을 따라 올라오는 묵직한 무게로 삶의 무게를 마주한다. 크고 작은 안달에 흔들리지 않는 삶의 무게란 뜻밖에도 바람에 흔들거리는 실에 무게추를 매다는 것처럼. 욕구를 거스르며 십자가 위에 우리 몸을 매달 때 만나는 뜻밖의 해방.  

  

하지만 식별이란 감을 잡기는 하겠으나 예를 만나기가 너무나 힘겨운 고귀한 체험. 자기를 거슬러 나아가는 일이기에 식별은 자기의 적식별은 어디에 내 놓고 주장할 만큼어디에나 적용가능한 옳고 그름의 개념도 아니다고요한 곳에서 수행하는 명징한 머리의 영역도 아니다오히려 각자의 삶그 아수라의 혼란 속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떨리는 마음으로 움직이는 운동나라는 굴곡진 인생의 수 많은 욕구와 소리들에 대한 나만의 고유한 응답개념으로 정리한 방향이 아니라 발로 뛰는 이의 가쁜 호흡. 해서 바른 식별이란 다른 누구에게 팔 수도내가 가는 길을 따라오라며 가르쳐줄 수도 없으며, 식별은 음미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고식별은 지금 이 순간 속도를 줄이면 곧 양력을 잃고 떨어지는 비행기처럼 끊임없이 속도를 내야 하는 바쁜 걸음. 어디에서 어떻게 배울 것이냐 다시 묻게 되는 막막함. 

  

더군다나 사정이 이러하니식별이란 불가피하게 비장한 움직임일 수밖에 없다이 부박한 세상에 비장함이라니온갖 무거움을 덜떨어진 늙다리의 특징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무겁고 비장한 식별은 애초부터 팔리는 품목이 아니다. `좋아요`를 받기 힘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별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나 뜻밖에도 식별은 지천으로 깔려, 인간을 살려온 참으로 쉽게 만나는 사태다. 이를테면 아이를 낳는 어머니의 마음그녀의 발걸음아이를 잉태하고 배가 불러오고결국 자기 몸을 쪼개고 생명을 살리는 어머니가 식별 덩어리다내가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서 내 생명을 나누는 일누군가는 이를 사랑이라 높여 말하고삶이라 말하고또 다른 이는 숙명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수 많은 이들에게 아이를 낳는 일이란 누구나 하는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일이기도 한하지만 아이를 잉태한 이는 매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어디로 가야하는지 식별하는 자다언제든 그들의 식별이 올바르다는 말은 아니다. 틀린 식별, 두려움에 쌓인 실패도 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식별중이라며 떠벌일 것도 자랑할 것도 없이 겸손하고 가난하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그에 못미쳐 느끼는 갈증. 식별은 이렇게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고자매 순간 다시 방향을 정하는 가난한 행위다. 식별은 사랑이다. 더 명료하게 정의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 식별해야 하는가지금 우리 뱃 속에 아이를 품고 있듯 살면된다. 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가 기준이 되는 삶의 방향새 생명에게 어떤 세상을 줄 것인지어떤 결정을 나눌 것인지사실 믿는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을 잉태한 자들이다그리스도라는 말씀을 세상에 내 놓는 사람들이다믿는 이들의 식별이 닮아야 할 모범이 참으로 가까이에 있다.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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